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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로 나온 '엽문'과 동시대를 살던 당대 쿵후 최고수들의 결투영상입니다. 
아마 이미 보신분들도 많으실겁니다만 한마디로 얼핏보기엔 저잣거리 무뢰배들의 싸움으로 보일정도로 무술영화에나 볼수있는 모습은 찾기 힘듭니다. 물론 무술전문가들은 저중에서도 고유의 무술동작을 엿볼수있다고 하는데 평범한 관객의 눈에는 잘 보이지않습니다. 백학권이 이소룡이 배웠던 영춘권과 비슷하다고 하니 이소룡이 했던 무술들은 영춘권같은 중국무술보다는 태권도나 가라데, 복싱, 무에타이등 여러 실전 격투기를 종합한것이라 볼수 있을겁니다. 실제로 이준구 사범에게 태권도를 배우기도 했었죠.




(1954년 실제로 있었던 태극권 (太極拳) 오공의(吳公儀) 와 백학권 (白鶴拳) 진극부(陳克夫)의 실제 결투영상)

 아마 우리가 볼수있는 실제 싸움에 가까운것은 '프라이드'의 뒤엉켜 싸우는 방식이 대부분일겁니다. 무술영화나 무협영화에서 포장되어 나오는 중국고수들은 중국인 특유의 과장과 허장성세가 대부분인것 같습니다. 왜정시대때 싸움꾼으로 이름을 날리던 김두한씨는 별명이 "잇뽕; 한방" 이었다고 하는데 단번에 주먹이나 날라차기 한방으로 적을 제압했다고 하며 실제 무술은 거의 배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대 실전 격투의 아버지인 "최배달"씨도 대부분 한두번 만에 상대방을 제압했다고 하니 수많은 초식이나 형태를 지닌 중국무술은 영화나 소설에서나 볼수있는것일겁니다. 모르는게 약' 인 쿵후무술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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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mented by 겨울비 at 2009/11/10 12:51

    허구의 종족 짱골라들의 허풍과 실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87337

    13억 중국인 가운데 92%를 차지하고 있다는 한족(漢族)이 실제 조사 결과 '유전학적으론 현존하지 않는 제3의 혈통'으로 나타났다.
    '한족은 혈통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인 개념'이라는 통설이 학술연구로 밝혀졌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중국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대학 생명과학학원 셰샤오둥(謝小東) 교수는 "순수한 혈통의 한족은 현재 없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15일 보도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중국 서북지역의 소수민족 DNA 연구 등을 통해 나온 것이다. 셰 교수는 "DNA 조사 결과 현대 중국인은 다양한 민족의 특질이 고루 합쳐진 것으로 어떤 특정 민족의 특질이 도드라지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한족은 중원(中原)에 살고 있다'고 생각돼 왔으나 이는 특정 시기의 한족을 주변의 다른 종족과 구별하기 위해 만든 지역적 구분일 뿐"이라면서 "이젠 한족을 그렇게 지역적으로 따져 정의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춘추전국시대 현재의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 세워진 진(秦)은 소수민족인 '서융(西戎:서쪽 오랑캐)'이 주류였다는 것이다.
    또 중국 역사에 나타나는 중원의 범위는 주로 현재의 산시(山西) 남부와 장쑤(江蘇) 서부 및 안후이(安徽) 서북부 등의 소수 지방을 포함한 허난(河南)성 일대였으나, 이곳에 거주한 사람들을 한족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중국인들은 또 자신들이 "염제(炎帝)와 황제(黃帝)의 자손(炎黃子孫)"이라고 주장하지만 연구 결과 황제와 염제의 발원지도 중국인들이 오랑캐로 치부해 왔던 '북적(北狄)' 지역이었던 것으로 연구 결과 드러났다. 황제와 염제의 발원지는 모두 현재의 간쑤성과 산시(陝西)성에 걸쳐 있는 황토 고원지역으로 이 두 곳 모두 한족의 본거지가 아닌 것은 물론 주요 거주지역도 아니라는 얘기다.
    셰 교수는 "연구 결과 오히려 중국 북부에서 남부로 이주한 소수민족 객가족(客家族)이 고대 중원인의 문화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이들의 고어(古語), 풍속 및 습관에서 나타나는 역사의 흔적을 보면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중원인"이라고 강조했다.

    http://news.donga.com/fbin/output?n=200707250129

    한국계 신석기토기 4000여점 일본 오키나와서 무더기 발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81&aid=0002001173

    삼별초가 일구어낸 오키나와 유구국
    http://blog.daum.net/santaclausly/11793489

    짱골라 무술, 세기의 대결 ㅋ ㅋ ㅋ

    사건의 배경은 오씨 태극권의 오공의가 스스로의 무술을 소개하면서 복서에게 이길 수 있고 의심스러우면 덤벼도 좋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바람에 백학권사 진극부가 발끈하여 붙게 된 싸움입니다.

    이게 바로 짱골라들이 말하는 전설적인 세계최고수들의 대결..

    앞으로 진짜 고수는 숨어있다느니, 강호를 떠나 은둔하고 있다느니 하는 말은 안 나오기 바란다...

    1954년에 짱골라들 사이에서 세기의 대결이라 불렸던 고수들의 대결 동영상... 평범한 사람들이 쥐나무술의 고수들이 실제 싸우면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 늘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동영상을 보고난 후의 사람들의 반응이 쥐나무술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는 등 황당한 반응 일색이어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유명한 백학권사가 다른 문파의 태극권사와 벌인 대결은 한국영화 '품행제로'에서 전설적인 고교싸움꾼 박중필이 영화 후반부에 어떻게 싸우는지 보여주는 수준의 '쌈박질'이기 때문이다. 무술고수인 사람들은 시합 동영상에서 각 무술의 특징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중후한 남성들이 시비붙어 싸우는 개싸움(?) 정도 밖에 안보이기 때문이다.

    팔괘장이니 태극권이니 하는 쥐나무술의 신비롭던 것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볼품없는 대결이 짱골라들 사이에서는 전설적인 시합이었던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고수대결을 기록한 이 영상에는 70년대 무술영화에나 나올법한 '휙~ 휙~' 하는 음향효과까지 억지로 넣어 진지한 대결이 더욱 코믹하게 보여지고 있다.

    http://video.cyworld.com/203037843

    당나라를 정복하라! 고구려의 후예들 발해와 제나라 & 택견, 가라데, 우슈 등 무도·무예·무술의 전파 교류 (제주도, 만주, 오키나와 등 여러 지역의 유물, 유적 등의 설명과 함께)

    http://blog.daum.net/hearo9mars/7072074

    가라데와 영춘권의 대결 및 그 기원들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잘 안 보이는 그림을 클릭하면 확대해서 볼 수 있더군요.

    이 게시물은 약 260개의 사진과 그림이 들어간 대용량이라 불러들이는데 1분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게시물의 이미지가 다 뜨지 않았을 때는 '새로고침' 하면 됩니다.

    http://blog.naver.com/xxxod/70071717538

    양쯔강[揚子江]과 황하...
    사실 예전부터 서토의 왕조의 수군은 바다가 아닌 강에서 건조되고 훈련되었다.
    그들에게 수전(水戰)이라 하면 강에서의 전투를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명한 적벽대전을 비롯해 비수전투(淝水戰鬪)처럼 적어도 649년 이전 수(隋)가 진(陳)을 무너뜨리기 전까지 화북과 화남지방으로 경계를 나누는 강을 둘러싼 전쟁은 많이 일어났다.
    왜냐하면 몇 안되는 통일왕조 시기가 아닌 오랜 시간을 남북조시대나 삼국시대 같이 서로 갈라져 전쟁을 벌였고, 그 경계는 강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기록을 참고하면 그들의 대규모 수군이 강을 벗어나 바다를 거점으로 전쟁을 시작한 것은 수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가 거의 처음이라 할 수 있으며, 이렇듯 강에서 조련된 그들 수군은 바다의 파도를 넘나들며 경험을 쌓은 고구려 수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은 이들 수군은 그저 병참과 병사의 수송을 담당하는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후대로 이어져 명의 영락제때 정화가 활약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수군을 육성하지 못한다. 실례로 조일(朝日)전쟁 당시 정원이 백수십명이던 판옥선을 주력함으로 사용하던 조선수군에 비해, 명의 군선은 그 크기가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나마도 급조한 수군이었다. 북방유목민족이 왕조를 세운 금, 원시대의 수군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http://blog.daum.net/hearo9mars/7072081

  2. Commented by 태극도사 at 2010/06/04 16:55

    워낙 유명해서 저도 오래전에 보았습니다.엽문의 경우 보셨을수도 있는데 견자단이 스스로 몇번이나 말했듯이 엽문이라는 영화에는 허구가 많이 가미되어 있습니다.예전에는 몰지각하고 무지하게 무인곽원갑이나 엽문이 바람의 파이터 모티브를 따간게 아닌가 착각한 적도 있었는데...몇몇 부분을 제외하고 그렇지 않다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견자단의 정무문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었죠. 이소룡과 마찬가지로 견자단도 태권도등 여러무술을 섭렵한건 대강 짐작하실거고..소태극 당시 무술과 웨이트로 어느정도 다져진 몸은 저런 무술인과 비교 불가입니다.
    신당산대형에서 견자단의 핸드 스피드는 그 실효성이야 어찌했든 타의추종을 불허하더군요.
    뭐 예전에는 이소룡의 펀치 스피드를 호야와 비교하며 까는 식으로 그런 분들도 많았는데
    전체적인 밸런스와 스피드가 중요한거 같습니다.견자단의 이번 엽문2는 견자단의 실전감각과 이론에 따른 무술철학이 상당히 깊어지지 않았나 싶구요. 세월의 무게야 뭐...
    논지에 벗어난 영화 이야기를 해버렸는데 가능한지는 논외로 두고라도 서로의 초식을 무엇으로 읽던...미리 읽어낼수만 있다면 무협영화와 같은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국역사에서 바닥을
    뒹굴고 싸웠는지 이런 것들을 역사 다루시는 분들이 좀 다뤄주시면 좋을거 같은데... 예전에 올라왔었는지는 알수가 없군요.그냥 견자단까지 혹 묻혀가는게 아닌가 싶어 적어 봤습니다^^